왕의 이름에 '형제'라는 뜻이 숨어 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어요?
기원전 1000년, 지중해의 작은 항구 도시 비블로스에는 아히람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역사에 남긴 건 화려한 정복 기록이 아니라 석관 하나였어요.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을 알면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아히(형제)'와 '람(존귀하다)'을 합쳐 '내 형제는 존귀하다'는 뜻이거든요. 온 나라를 호령하던 절대 권력자의 이름치고는 의외로 소박하지 않나요? "나는 위대하다"가 아니라 "너는 나의 형제다"라니, 왕관보다 손을 먼저 내민 셈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발상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반투어권에서도 똑같이 등장합니다. '우분투(Ubuntu)'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I am because we are)'는 뜻이죠. 남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공동체의 안부를 곧 자신의 안부처럼 여기는 문화가 살아 있습니다. 이웃이 굶으면 나도 배부를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셈법이에요.
불교는 이걸 '연기(緣起)'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홀로 설 수 없고, 서로 기대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사상이에요. 왕도, 승려도, 나뭇잎 한 장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죠. 뿌리와 흙과 비가 없다면 나뭇잎도 없듯이, 나 역시 수많은 타인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서양 철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필리아(philia)', 우정과 유대 속에서만 완성된다고 했고, 에피쿠로스는 "죽음이 있을 때 나는 없고, 내가 있을 때 죽음은 없다"며 먼 사후보다 지금 여기의 관계에 집중하라 말했습니다.
결국 비블로스의 왕도, 아프리카의 현자도, 인도의 붓다도, 그리스의 철학자도 시대와 대륙을 넘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행복은 혼자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관계의 산물이라고요. 내가 진짜 기쁘려면 옆 사람도 기뻐야 하고, 언젠가 올 사후의 영생보다 오늘 살아 있는 이 순간의 다정함이 훨씬 더 절실하다고요.권력의 정점에 있던 왕조차 자기 이름에 '형제'를 새겼다는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오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 한마디 건네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지음 · 프런티어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를 74년간 추적한 결과를 담은 책.
부와 성공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 인생의 행복과 건강을
가장 강하게 예측했다는 것을 방대한 데이터로 보여줍니다.
오늘 글의 주장을 과학으로 뒷받침하는 셈이에요.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틱낫한 지음 · 류시화 엮음 · 김영사
"한 장의 종이 속에는 구름과 나무꾼이 다 들어 있다"는 유명한
비유로 상호연결(연기)을 설명하는 책. 지금 이 순간의 호흡과
관계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오늘 글의 마지막 문장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